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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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햐얀 창틀 너머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건만, 어째서인지 습기 찬 비냄새가 공기에 실려오는 날이었다. 카지 소우타는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방이 걸린 고리 뒤에는 혼자 쓸 정도의 접이식 우산이 걸려 있었다. 오늘 오후 즈음에는 비가 온다며 우산을 챙겨주던 어머니의 말을 굳이 안 들을 필요가 없어 실랑이 같은 건 벌이지 않고 그냥 말없이 받아온 결과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날짜에 맞지 않는 서늘한 바람이 조금 불어온다 싶더니 이내 하늘이 구름으로 어둑어둑해졌다. 아, 오늘 우산 안 가져왔는데. 하는 소리가 교실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카지는 그들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어쨌건 자신 몫의 우산은 있었고, 적어도 하교길에 비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교실에서 꾸물거리며 친구들을 보내는 이치노세를 보기 전까지는.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던 이치노세 치요리와 눈이 마주친 것은 일순이었다. 금세 시선을 피한 이치노세가 척척 가방을 싸서 나가는 것을 카지가 느리지만 그녀보다 넓은 보폭으로 쫓아갔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쭈그려 앉아 갈아 신는 이치노세를 카지가 내려다본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자신을 깔보는 것으로 생각됐는지 이치노세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뭐, 하고 물어왔다. 카지가 대답한다. 너, 우산 없구나. 금빛 눈동자에 이치노세의 검은 머리가 반사되어 보인다. 빌려 줄게.

 그럼 너는? 물어오는 이치노세의 질문에 카지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같이 쓸 건데 무슨……. 아, 너한테 그냥 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물으니 퇴로는 없었다. 이치노세가 고개를 재빨리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가자.”


 카지가 어느새 우산을 펼쳐 내 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응…….”

 옆에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겼다. 비가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조금은, 아까 전보다 붙어오는 거리가 신경 쓰였다. 이렇게 나란히 둘이 걸은 게 얼마만이지……. 집도 가까워 한참은 이렇게 갈 텐데. 뭔가 할 말이라도 없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슬쩍 옆을 바라보자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앞만 보는 것만 같은 카지와 반짝 눈이 마주쳤다.
 놀라서 움찔, 떨며 앞을 봤다가 다시 옆쪽을 곁눈질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길을 보며 걷고 있는 카지가 보였다. 놀라서 심장이 두근거리잖아. 바보 카지. 아까보다 커진 심장박동 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레 걸으며 카지와 발을 맞춰 걸어갔다.
 1인용 우산은 작아서, 가끔씩 손이 스치곤 하는데, 그 때마다 카지를 바라보면 카지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슥 나를 덤덤히 보더니 금세 앞으로 눈길을 돌리곤 했다. 어쩐지 서운해 팔을 꼬집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하지 않았다. 갑자기 친한 척한다고 생각되게 할 순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닿은 손은 어쩐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이건 추우니까 그런 거다. 비가 와서 기온이 떨어져서 그런 걸 거야 분명.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카지가 갑자기 물어왔다. 고개를 크게 젓고 대답을 하려 목소리를 가다듬는 동안, 카지가 툭툭 어깨를 털어냈다. 그제서야 보였다. 내 쪽으로 기울어진 우산과, 흠뻑 젖은 카지의 우산 밖으로 삐쳐나간 팔이.

 “그, 우산, 너무 내 쪽으로 기울인 거 아냐?”

 “……. 난 이미 젖었으니까.”

 그렇게 말하곤 태연히 걸음을 재촉하는 카지를 쫓았다. 고맙다고 말해야 하나? 아까 어깨를 턴 건 일부러 그런 걸까? 아~ 어떻게 하면 좋지? 그러는 사이 어느새 집에 다다라서, 우리집 문 앞에서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인 카지가 입을 열었다.

 “잘 가.”

 현관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한 손을 들어 흔들었다.

 “잘 가. ...데려다 준 거 고마워.”

 “아냐. 난 이제 갈게.”

 “응.”

 미련없이 멀어지는 뒷모습에 조금은 떨떠름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흔들었다. 쾅 하고 문을 닫고 들어와 현관문 앞에 주저앉았다. 평소보다 큰 심장소리가 귓가에서 두근거렸다. 쭈그리고 앉아있다가, 방으로 올라가서 창밖으로 카지의 집 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나를 바라보던 카지의 눈빛이 아른거려 괜히 커튼을 쳤다.